즐기는, 강요하는

2010/08/26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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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살 소년과 여교사의 짧지만 강력한 사랑"이 적힌
띠지를 두른 책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에로에로 할 소재를, 너무나 순수하게 다루는 솜씨라니. 얇은 159쪽 안에서 이 책은 사랑하는(했던) 여교사의 추모식에서 시작하여 스킨십-애무-섹스까지 쭉 진행되는 과거를 회상하며 애인이 사고를 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시점을 사이사이 넘나들면서 짜릿한 순간과 덤덤한 일상을 순결하게 보여준다.

사랑이 움직이는지 영원한지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논쟁중이지만. 영원을 믿는 쪽에서 죽음이라는 장치를 둔다면,  영원을 믿지 않는 쪽에선 바람둥이를 등장시키거나, 식어버린 연인을 보여주기보단 사랑이 진행되는 속도를 무한정 빠르게 해버리면 재밌겠다. 스킨십을 미리 앞당겨 하고, 오게 될 권태기를 건너뛰고, 결혼도 하기 전에 이혼을 하고, 헤어짐을 맞기 싫으니 만남을 부정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면 어떨까.

사랑이 순수한지 변화무쌍한지도 잘 모르면서 삐딱하고 엉뚱하게 보던 때가 있었다. 8년전 스무살 내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고 성적 자유를 보장하라든지, 이창동 감독 <오아시스>를 보고 장애인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고 뉘들도 인정해라라고 잘난척 했던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이 책도 10대를 아기로 보지 말라던지, 40대 미혼 여성에게 결혼을 강요말라고 느껴버리면 얼마나 웃길까. 나도 사랑이 순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일 능력이 조금 길러진듯 하다.

자극적 사랑에서만 관능을 느끼거나, 사랑에 의무나 망상과 환상을 가지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침묵의 시간 - 10점
지크프리트 렌츠 지음, 박종대 옮김/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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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Helio 2010/08/29 20:17

    오~ 좋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군.

    "열아홉 살 소년과 여교사의 짧지만 강력한 사랑" 이라는 카피는
    김하늘의 명대사,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생이야"와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를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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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띠보 2010/08/29 22:12

      오.. "좋은" 이라니. 저 소속감과 자존감이 좋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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