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세사리에 팔과 다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검은색 살갗 위에서 괴상한 문양과 조각들이 춤을 췄다. 유경을 처음 봤을 때는 장신구만 눈에 들어왔다. 취향이 독특한 분이려니 했지만 그리 특이해 보이지는 않았다. 외적 규율이 거의 없는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볼 때 좀 튀는 정도로 꾸미는구나 싶었다.
자유분방한 모습과는 다르게 업무는 기가막히게 탁탁처리하셨는데, 게다가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유경을 좋아했다. 만난지 한 달도 채 안되서 나도 자연스레 추종자가 되었다.
졸졸졸 따라다니던중에 유경이 일을 그만둔다는 얘기를 얼핏 흘려들었는데, 워낙 당시 하고 있는 일이 많았기에 나는 다른 사람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해외로 나간다는 이유를 듣고서야 하던 일을 정리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제 며칠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아쉬워 해야만 했다. 정확히 언제 환송회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짐을 덜은 기분으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게 됐다"라고 말했으니 대선 후에 떠났을 것이다. 책에서는 "한 우물에서 30년을 살았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짐을 지어드릴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누나가 떠난 5년간 대한민국이 더 나쁘게 됐다. 군생활 하느라고 그 중 2년은 아무소식 접하지 않고 지냈던게 그나마 위안일지도 모르겠다. 환송회 때는 밤을 꼬박 새웠는데, 유경은 몸을 다스린다고 술을 입에대지 않았고, 누나에게 나 대신 자유를 꼭 찾아달라고 당부한 것만 기억한다. 또 누군가가 존경하는 사람을 물었을 때 "최루탄이 마구 터지던 집회 때 흩어지지 말자고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징을 울렸던, 지금은 어디서 뭐하는지 모르는 친구"라고 대답했다. 난 뭐 시덥잖다고 생각했는데 군대에서 화생방 체험을 세번 한 뒤로는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졌는지 알게 됐다. 그 뒤로는 나도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보다는 일상속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끔 소식지에 아시아 오지에서 보내온 편지들이 실렸고, 가끔씩 접속하는 인터넷으로 메일을 주고 받았다. 까물까물 연락이 오고가다가, 군 생활 5개월째 되던쯤 진짜 답답해서 누나한테 해외여행이 가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었다. 누나는 인도에 있었는데, 마침 큰 날치기 사건을 당해서 한국으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나도 곧 외박 예정이 잡혀있어서, 누나하고는 3년만에 만날 수 있었다. 인사동에서 만났는데, 그 후로 종로 쪽에서 진입하는 길목 우측에 널린 광장은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제 웬만하면 술을 끊었다는 얘기만 기억이 난다. 이짓거리를 오래도록 해먹으려면 몸이 조금이라도 남아나야하지 않겠냐고 그랬다. 세계를 돌아다니는 일이 이짓거리로 말할 만큼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뭔가 진득한 힘이 느껴져서 그 뒤로 나도 술 안먹는 일을 흉내내고 있다. 세계는 못 누벼도 자전거로 동네라도 돌아다니는 이짓거리라도 좀 오래하려고.. 수첩엔 "05.6.6 유경이 누나를 만났다. 내 비논리적인 대화를 다 이해하고 수용한다. 그게 매력이고 진정한 공부이지 싶다"라고 적어뒀다. 책 서문에도 얼핏 나오는대로 엄청나게 많은걸 보고 배웠기 때문일게다.
구체적으로 뭘 봤는지는 책으로 차근히 살펴봐야 되겠다. 운전면허 갱신 때문에 11월에 한국에 들어온다는데, 나 같은 '섬 소년'도 만나주리라 기대한다. 혈액형 G(Gypsi)형을 가진 누나가 부럽다. 난 B(Bangkok)형인데.. 다시 대륙으로 날아갈 때 뒤에 업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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